칠곡호국평화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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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의 55일! 시산혈하의 대혈전!

이 땅에는 전쟁을 아는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6·25전쟁이 일어난 지 반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전쟁은 우리에게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픈 역사이기 전에 우리가 기억해야할 소중한 교훈입니다. 칠곡에서 벌어졌던 55일간의 낙동강방어선전투,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칠곡에서의 승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55일1950년 8월1일 ~ 9월24일 구국의 낙동강 방어선 전투 - 그날 칠곡에선···

낙동강방어선전투

낙동강방어선전투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6·25전쟁이 발발한 후, 1950년 8월 1일부터 9월 24일까지 55일 동안 낙동강 일대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로서 북한군의 남진과 한반도 공산화 저지를 위하여 국군과 유엔군이 목숨을 바쳐 대한민국을 지켜낸 전투이다.

특히 낙동강방어선의 최전선이었던 왜관과 다부동은 대한민국의 임시수도가 있었던 대구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북한군은 대구 점령을 위해 끊임없이 칠곡 일대를 공격하였다.

당시 왜관과 다부동 지역은 국군과 유엔군이 협조하여 방어를 담당한 곳으로서 왜관 일대는 미 제1기병사단이 방어하였고, 다부동 일대에는 국군 제1사단이 배치되어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였다.

북한군은 8월과 9월 두 차례의 공세를 실시하여 낙동강방어선의 돌파를 시도하였으나 국군과 유엔군의 연합작전과 융단폭격 등에 의해 막대한 병력손실을 입었고,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군 역시 이른바 ‘시산혈하(屍山血河)’의 참혹한 전투 속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1950년 9월 15일, 북한군의 허를 찌른 국군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실시되었고, 이튿날 오전 9시 낙동강방어선 전역에서 아군의 총반격이 펼쳐졌다. 후방이 차단되어 혼란에 빠진 북한군은 국군과 유엔군의 기세를 당해낼 수 없었고, 결국 김일성은 북한군 전 부대에 총퇴각 명령을 내렸다.

그 결과 1950년 9월 24일,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방어선에서 후퇴하는 북한군에 대한 추격과 함께 대대적인 총반격을 실시하였다. 낙동강방어선전투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한 전투였다.

만약 낙동강방어선에서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군을 막지 못하였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국군을 비롯하여 세계 각지에서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참전한 수많은 병사들이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귀중한 목숨을 바쳤고,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는 이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지도 PDF

칠곡의 55일 전투

  • 1 낙동강 방어선 X선 구축 1950. 8. 1. ~ 8. 4.

    8월 1일 워커 미 제8군 사령관의 명령 하달에 따른 '낙동강 방어선 X선' 구축

  • 2 왜관철교 폭파 1950. 8. 3.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하여 밤 8시 30분 왜관철교(호국의 다리, 복선철교) 폭파

  • 3 369고지 전투 1950. 8. 6. ~ 8. 12.

    수중가도를 이용하여 낙동강을 건너온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으로, 故최승갑 용사의 유해가 발굴된 지점

  • 4 금무봉 전투 1950. 8. 9. ~ 8. 10.

    북한군의 매복기습과 포격으로 다수의 미군장병 사상

  • 5 낙동강 방어선 Y선 구축 1950. 8. 13.

    국군의 방어선 축소를 위하여 왜관과 다부동을 중심으로 '낙동강 방어선 Y선' 구축

  • 6 자고산 미군포로 학살 만행 1950. 8. 13. ~ 8. 17.

    미군 박격포소대원 40여 명은 북한군의 포로가 되어 끌려다니다 자고산 기슭에서 학살당함

  • 7 유학산 전투 1950. 8. 13. ~ 8. 23.

    험준한 암벽을 맨손으로 오르며 9회에 걸친 백병전과 1천여 명의 병력손실 끝에 유학산 탈환

  • 8 328고지 전투 1950. 8. 13. ~ 8. 24.

    12일 동안 고지의 주인이 15번 바뀌는 시산혈하의 대혈전 끝에 국군 승리

  • 9 수암산 전투 1950. 8. 15. ~ 8. 30.

    굶주리고 탄약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막대한 병력손실을 입으며 북한군과 처절한 전투를 치름

  • 10 유엔군 융단폭격 실시 1950. 8. 16.

    B-29 폭격기 98대가 왜관 서북쪽 약목, 북삼 일대의 북한군 집결지에 960톤의 폭탄 투하

  • 11 볼링앨리 전투 1950. 8. 18. ~ 8. 23.

    대구로 향하는 북한군의 T-34 전차와 이를 저지하기 위한 국군과 미군의 M-26 전차가 신주막 계곡에서 6·25전쟁 최초의 전차전을 펼침

  • 12 가산산성 전투 1950. 8. 18. ~ 8. 27.

    후방지역에 대한 교란을 저지하기 위해 가산산성 일대에 배치된 북한군을 섬멸함

  • 13 가산전투 1950. 8. 31. ~ 9. 4.

    가산 동북쪽에서 남진하는 북한군을 물리치고 방어진지를 확보함

  • 14 팔공산 전투 1950. 9. 5. ~ 9. 14.

    대구 점령을 목표로 팔공산 북쪽에서 공격하는 북한군을 격퇴함

  • 15 315고지 전투 1950. 9. 11. ~ 9. 12.

    대구 북쪽 12km 지점까지 북한군이 진출하여 대구를 위협하였으나 국군과 미군은 이를 격퇴하여 대구의 최대 위기를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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